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가 화제가 될 때마다 같은 질문이 나온다. 그는 누구인가. 나는 질문이 조금 어긋나 있다고 본다. 더 쓸모 있는 질문은 그가 떠난 뒤에도 이 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가는가, 그리고 사라졌다는 사실이 무엇을 남겼는가다.
1. 알려진 사실은 많지 않다
사토시는 2008년 10월 31일 암호학자들이 모인 메일링 리스트에 비트코인 논문을 소개하는 글을 올렸다. 첫 문장은 신뢰할 제3자 없이 개인끼리 직접 주고받는 전자화폐를 만들고 있다는 내용이다. 2009년 1월 3일에는 첫 블록이 만들어졌다. 이 첫 블록에는 그날 영국 일간지 타임스의 표제, 곧 재무장관이 은행 2차 구제금융을 검토한다는 기사 제목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사토시는 천천히 물러났다. 마지막 포럼 글은 2010년 12월 12일이다. 2011년 4월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마이크 헌에게 이제 다른 일로 넘어갔고 프로젝트는 개빈 안데르센을 비롯한 사람들의 손에 잘 맡겨져 있다는 메일을 보냈다. 이것이 마지막 공개 소통으로 알려져 있다.
이 퇴장 방식은 눈여겨볼 만하다. 사토시는 공지도 고별 인사도 남기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확인되는 메일은 일상적인 개발 이야기 끝에 슬쩍 덧붙인 한 줄에 가깝다. 코드와 문서, 포럼 글은 그대로 남았고, 이후의 개발은 다른 사람들이 이어받았다. 창시자가 빠진 채로도 프로젝트가 이어지는 것을 우리는 눈으로 확인해 왔다.
그 뒤로 15년이 넘도록 사토시임을 증명한 사람은 없다. 2024년 영국 고등법원은 자신이 사토시라고 8년간 주장해 온 한 호주 컴퓨터 과학자에 대해 그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증거를 위조했다는 판단도 함께였다. 올해 4월에는 뉴욕타임스가 영국 암호학자 한 명을 유력 후보로 거론했다. 근거는 옛 메일링 리스트 글 13만여 건의 문체 분석 같은 정황이었고, 지목된 당사자는 부인했으며, 결정적 증거는 없었다.
2. 창시자가 남긴 것은 규칙과 코인이다
사토시가 떠나며 남긴 것은 코드에 박힌 규칙이다. 발행량은 2,100만 개에서 약간 모자라는 선에서 멈추고, 새 비트코인이 나오는 속도는 21만 블록, 대략 4년마다 절반으로 줄며, 블록은 평균 10분 간격을 목표로 만들어진다. 이 값들은 비트코인 위키에도 정리돼 있다. 위키는 사토시가 이 상수들을 왜 그렇게 골랐는지 충분히 설명한 적이 없다고도 적는다.
또 하나 남은 것은 코인이다. 연구자 세르히오 레르네르는 2013년경 초기 블록 약 2만 2천 개가 같은 채굴자의 흔적을 보인다는 패턴을 찾아 '파토시'라고 이름 붙였다. 이 채굴자가 사토시라고 보는 시각이 많고, 모은 물량은 추정치가 약 110만 개이지만 다른 연구자들은 75만 개 안팎으로 본다. 어느 쪽이든 거의 쓰이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레르네르가 찾은 소액 이동 십여 건, 합쳐서 800개 안팎을 빼면 15년 동안 손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3. 눌러야 할 한 사람이 없다
비트코인의 규칙은 사람의 약속이 아니라 각자의 컴퓨터가 검증하는 소프트웨어에 있다. 사토시의 논문은 공격자가 정직한 체인을 따라잡을 확률이 따라잡아야 할 블록 수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는 계산까지 직접 보여 준다. 이 시스템이 믿어 달라고 말하는 대신 계산해 보라고 하는 구조라는 뜻이다. 누가 만들었는지가 규칙의 효력을 좌우하지 않는다. 이름을 걸고 보증해 줄 사람이 필요한 돈과는 출발점이 다르다.
창시자가 눈에 보이면 압력은 그에게 모인다. 법원 명령이든 협박이든 한 사람을 향하면 그만이다. 중앙화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보면 이 구조가 분명해진다. 테더는 지난 4월 미국 수사 당국과 재무부 제재 당국의 협조 아래 두 지갑의 3억 4,400만 달러어치를 동결했다. 발행사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비트코인에는 그런 발행사가 없다.
규칙을 바꾸는 일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비트코인 개선 제안(BIP)은 투표가 아니라 거친 합의로 굴러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구조를 시험한 사건이 2017년 블록 크기 논쟁이다. 대형 채굴 업체가 새 기능 세그윗의 도입을 버티자, 개발자 한 명이 "신호하지 않는 블록은 거부하겠다"는 사용자 활성화 소프트포크(UASF)를 제안했고, 결국 세그윗은 그해 8월 활성화됐다. 이 사건을 두고 비트코인 매거진은 검증 노드를 돌리는 사용자들이 최종적으로 거래의 유효 여부를 정한다고 정리했다. 이 해석에는 노드 쪽의 시각이 짙게 깔려 있다. 그래도 창시자의 한마디가 아니라 논쟁과 힘겨루기를 거쳐 규칙이 지켜졌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4. 사라진 것은 설계였을까
사토시가 일부러 이 구조를 만들려고 사라졌다는 해석이 인기를 끈다. 나는 이 해석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토시가 직접 이유를 설명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알려진 정황은 오히려 엇갈린다. 개빈 안데르센이 CIA 본부에서 비트코인 강연을 하기로 알려진 뒤 사토시가 사라졌다는 설이 있지만, 암호화폐 매체 크립토슬레이트는 그 강연이 마지막 연락보다 두 달 뒤였고 연결은 추측에 불과하다고 정리한다.
한편 사토시가 안데르센에게 보낸 마지막 메일들에는 자신을 신비로운 인물로 다루지 말고 오픈소스 프로젝트와 개발 기여자들에게 공을 돌리라는 취지의 당부가 있었다고 한다. 이 메일은 창시자 중심이 아닌 프로젝트를 원했다는 방증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영영 사라지겠다는 계획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글에서 설계라는 말은 결과를 설명하는 비유로만 쓴다.
5. 정리
사토시가 누구인지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확인되는 것은 그가 코드와 문서를 남기고 물러난 뒤에도 프로젝트가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발행 규칙은 각자의 컴퓨터가 검증하는 소프트웨어 안에 있고, 규칙이 지켜진 것도 한 사람의 한마디가 아니라 논쟁과 힘겨루기를 거쳐서였다.
창시자가 눈에 보이면 압력은 그에게 모인다. 발행사가 있으면 테더처럼 지갑을 동결할 수도 있다. 비트코인에는 눌러야 할 한 사람도, 동결을 지시받을 발행사도 없다. 발행 규칙이 공개돼 있고 총량이 2,100만 개로 정해져 있다는 것도 만든 사람을 믿으라는 말이 아니라 직접 계산해 보라는 말이다. 신원을 몰라도 되는 시스템이 신원이 알려진 시스템보다 더 단단하다고 나는 본다.
이름을 걸고 보증해 줄 사람이 필요 없는 돈을 원한다면 고를 것은 정해져 있다. 비트코인이 답이다.
참고 자료
- Satoshi Nakamoto — Bitcoin P2P e-cash paper (암호학 메일링 리스트, 2008) — 2008년 10월 31일 논문 소개 글과 "신뢰할 제3자 없음" 문구 확인
- Nakamoto Institute —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사토시 나카모토, 2008) — 논문 11절의 공격자 추격 확률 계산 확인
- Bitcoin Magazine — Ten Years Later: A Reflection on Bitcoin's Genesis and Satoshi's Timing (Bitcoin Magazine) — 2009년 1월 3일 첫 블록과 타임스 표제 확인
- CryptoSlate — Was the CIA behind Bitcoin creator Satoshi Nakamoto's 'disappearance'? (CryptoSlate) — 마지막 포럼 글 2010년 12월 12일, CIA 연관설이 추측이라는 평가
- The Defiant — Satoshi's final email to Mike Hearn (April 23, 2011) (The Defiant) — 2011년 4월 헌에게 보낸 마지막 메일 내용
- Bitcoin.com News — The Elusive Satoshi Nakamoto: Last Emails (Bitcoin.com, 2022년 무렵 보도) — 안데르센에게 신비로운 인물로 다루지 말라고 당부한 내용
- AP via News4Jax — British high court rules Australian computer scientist not Bitcoin founder (AP, 2024) — 2024년 3월 14일 영국 고등법원 판결 확인
- The Block — NYT investigation suggests Adam Back may be Satoshi Nakamoto; he denies the claim (The Block, 2026) — 문체 분석 기반 지목, 당사자 부인, 결정적 증거 없음
- Bitcoin Wiki — Controlled supply (Bitcoin Wiki) — 발행 상한, 21만 블록 반감, 약 10분 블록 간격
- Cointelegraph Magazine — The value of a legacy: Hunting down Satoshi's Bitcoin (Cointelegraph, 2022년 무렵) — 파토시 패턴, 약 110만 개 추정과 다른 추정치, 거의 미이동
- Cointelegraph — Tether freezes $344M in USDT (Cointelegraph, 2026) — 2026년 4월 미국 당국 요청 동결 사례
- Bitcoin Magazine — Bitcoin Independence Day (Bitcoin Magazine) — 2017년 UASF 경과와 노드 사용자 관점의 해석